고양이 짐보

 

 

내가 갸르릉거리면요, 딴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요

내 이름은 짐보 나쁜 친구들과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아요 쥐는

옛날부터 싫었구요 이 골목은 누구보다 제가 잘 알죠

 

세탁소집 아이는 미용사가 꿈이구요 열여덟에 결혼한 수리공 마키는

말할 때 눈을 찡긋거리는 버릇이 있고 대장장이 키다리는 아침부터 술이지요

 

내가 밤늦도록 갸르릉거리면요,

당신이 천방지축 꼬마였을 때 내가 아프게 할퀸 적이 있구나,

그렇게 생각해요 딴 뜻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

 

시답잖은 얘기예요 고양이에게 왕국이니 전설이니……

당신들보다 나이를 조금 더 먹었을 뿐, 내 이름은 짐보

지붕을 뛰어넘다 애꾸가 되었구요 고양이들은 나를 점프왕 짐보

그렇게 놀리더군요 나쁜 마음을 먹을라치면 벌써 먹었죠

우리 고양이들은 칼날 같으니까요

그러나 눈이 꼭 두 개일 필요 있나요 친구들은 이 마을 저 마을

들쑤시고 다니지 못해 안달을 하지만, 많이 안다고

다 아는 건 아니죠 내 이름은 짐보 이 골목만큼은

눈 감고도 걸을 수 있죠

 

내가 만일 밤늦도록 갸르릉거리면요,

당신은 아직 꼬마고 당신은 울고 싶은 일이 참 많고

그러나 그 모든 게 지난밤, 짐보가 할퀴고 간 상처 때문이라고

생각해요 당신들보다 나이를 조금 더 먹었을 뿐

딴 뜻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.

 

 

「고양이 짐보」,『여장남자 시코쿠』中

 

 

 

 

 

 


여장남자 시코쿠

저자
황병승 지음
출판사
문학과지성사 | 2012-11-30 출간
카테고리
시/에세이
책소개
눈을 감고 싶은 욕구와의 싸움에서부터 시작되는 황병승의 시를 읽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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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osted by 근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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